빌라도의 아내

천주교 2008. 11. 2. 21:47

본디오 빌라도의 아내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신간] 앙투아네트 메이 <빌라도의 아내>
김준희 (thewho)
▲ <빌라도의 아내> 겉표지
ⓒ 지식의숲
본디오 빌라도

천주교 또는 기독교를 믿는 신자라면 누구나 '사도신경'을 암송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주기도문과는 달리 이 사도신경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이유가 이 사도신경 때문이다. 물론 그 기억의 동기에는 빌라도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가 살았을 때의 유대 총독이었다. 당시 유대지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유대인들은 속세의 법인 로마법보다도 유대교의 율법을 더욱 중요시했다.

유대교 자체도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등으로 나뉘어져 서로를 증오했고, 젤롯당의 당원들은 단검을 들고 다니면서 모든 로마인들을 유대지역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사제들은 일반인들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가만히 보아넘기지 않았다. 예수는 이들을 공공연히 무시하면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고, 세례 요한은 유다 사막을 떠돌면서 사람들에게 세례의식을 베풀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로마가 유대지역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로마가 강대국 파르티아와 맞서기 위해서는 유대지역에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유대의 5대 총독이었지만,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하면 유대인을 달래면서도 이 지역에서 로마의 주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

독특한 예지력이 있던 빌라도의 아내

앙투아네트 메이의 장편 <빌라도의 아내>는 성경에서 짧게 언급되는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를 주인공으로 한다. 성경에서 그녀는 자신의 꿈을 말하면서 빌라도에게 예수의 재판에 관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작가는 그것을 모티브로 해서 클라우디아의 삶 전체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품의 시작은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통치가 2년째로 접어들 때다. 로마의 유력한 가문의 둘째딸인 클라우디아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서 게르마니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크 등에서 생활한다.

남다른 예지력이 있던 클라우디아는 종종 자신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정확히 예측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특별한 면 때문에 성장하면서 부모와 갈등을 겪는가 하면 사촌인 칼리굴라에게는 많은 놀림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날 연회에서 로마군의 백인대장 본디오 빌라도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들 부부는 새로운 임지인 유대지역으로 함께 향하지만, 클라우디아의 예지력은 이번에도 그녀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녀는 유대지역에서 만나게 될 한 남자와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끔찍한 방식으로 얽히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클라우디아의 예지력은 빌라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역사소설인 만큼 <빌라도의 아내>에는 많은 실존인물들이 실재했던 사건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시리아의 총독 피소와 게르마니쿠스 장군 사이의 갈등, 게르마니쿠스의 아내 아그리피나가 가지고 있는 티베리우스에 대한 증오와 원한, 아그리피나 일족의 몰락 등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예수가 살았던 유대지역은 어떤 모습일까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2000년 전 유대지역의 모습이다. 빌라도는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로마군단의 독수리 깃발을 성에 내건다. 그러자 율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유대인들은 그 '우상'을 치워달라며 죽음까지 각오한채 며칠 동안 강력하게 항의한다. 빌라도는 유대사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전기금을 압수해서 수로 공사를 단행한다.

이런 식의 갈등은 결국 예수의 문제로 터지고 만다.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격분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이다. 한술 더 떠 예수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는다. 유월절을 맞아서 죄인 한명을 풀어주려고 하자, 유대인들은 모두 젤롯당원인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한다.

굳이 빌라도가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서 총독 노릇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 후에 터진 유대전쟁을 보더라도,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의 갈등 폭발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성난 유대인들 앞에서 본디오 빌라도도 힘없는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가정이겠지만, 빌라도가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예수의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클라우디아는 특유의 예지력으로 예수의 죽음은 이후에 계속될 전쟁과 오해의 시작이 될거라는 사실을 안다.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그녀를 더욱 절망시킨다.

율법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세속의 법을 우선시하는 사람들. 이 둘은 애초부터 양립하기 어려웠다. 로마는 자신이 유대의 평화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로마는 단지 압제자였을 뿐이다. 이 지역이 '화약고'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여기서는 '팍스 로마나'도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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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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