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체질’이란 용어는 동·서양 의학사에 처음부터 등장한다. 동양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 중국 진·한대에 편찬된 가장 오래된 의서)’에서는 일찌감치 인간의 25체질론에 대해 언급한 바 있고, 서양의학의 아버지라 할 히포크라테스 역시 4체질론을 부르짖은 바 있다.
그러나 임상적 실증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은 고대의 체질이론은 동·서양 의학사에서 그 빛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묻혀 버렸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러 한국 땅에서 비로소 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조선의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이제마다. 그는 1894년에 완성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통해 인체를 정밀하게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임상한 결과물인 사상체질 이론을 내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제마 이전에 사상체질과 엇비슷한 사대(四大)이론을 소개한 이도 있다. 허준은 ‘동의보감’ 내경편에서 인체가 흙(土), 물(水), 불(火), 바람(風)의 4대 요소로 이루어져 있음을 옛 문헌을 빌려 이미 밝혀 놓고 있었다. 다분히 불교적 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사대 이론을 의학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힘줄, 뼈, 힘살, 손·발톱, 이 등 딱딱한 것은 모두 흙 기운에 속하며 정액, 피, 콧물, 진액 등 흐르는 것은 모두 물기운에 속한다. 호흡과 체온 등은 불 기운에 속하고, 영혼과 정신활동은 바람기운에 속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이 네 가지가 배합돼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흙 기운이 왕성하면 근골(筋骨)이 무쇠처럼 강해지고, 물 기운이 왕성하면 정(精)이 잘 분비돼 몸이 구슬처럼 아름다워지고, 불 기운이 왕성하면 기운이 구름처럼 뻗치며, 바람 기운이 왕성하면 지혜가 많아진다고 한다. 양의사로서 동·서양의 체질이론을 깊게 연구한 이의원 박사(선릉통증의원)의 말.
“동양의 사대 사상은 그리스 신화와 점성학 등에서 우주와 인간에 대한 근본 인식의 틀로 제시하는 공기(바람), 불, 흙, 물 4대 에너지 이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이것은 히포크라테스의 4체질설(혈액, 황담즙, 흙담즙, 점액)과 그 500년 후에 등장한 갈렌의 사대 기질설(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과도 그 맥을 같이한다.”
국내에서 28체질론을 주장하는 백승헌(28체질건강연구원장)씨는 한층 인체 의학적 관점에서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4체질설과 이제마의 사상체질론을 다음과 같은 시각으로 연결시켜 해석한다.
먼저 다혈질(多血質)은 그 말이 의미하듯 혈액 활동이 왕성하다는 의미로 소양인 체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양인 체질은 사상의학이론에서 비대신소(脾大腎小, 비장 기능이 발달하고 신장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짐)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소양인은 비장이 발달돼 혈액 생성이 많다고 본다.
둘째, 담즙질(膽汁質)은 담즙이 많다는 의미로 태음인 체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음인은 사상의학이론에서 간대폐소(肝大肺小, 간장 기능이 발달되고 폐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짐)하다고 하는데, 태음인은 간장이 발달돼 담즙 생성이 많다고 본다.
셋째, 우울질(憂鬱質) 또는 흑담즙질(黑膽汁質)은 담즙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태양인 체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양인은 사상이론에서 태음인과 반대로 폐대간소(肺大肝小, 폐 기능이 발달하고 간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짐)하다고 하는데, 태양인은 간장 기능이 약함으로 인해 담즙 분비가 부족하다고 본다. 우울질이란 말 역시 간장 기능이 약함으로 인해 신경이 예민하고 스트레스가 많고 우울증을 잘 느끼는 태양인 체질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점액질(粘液質)의 경우. 점액은 인체 내에서 내분비계가 발달돼 호르몬과 수분이 많다는 의미로 소음인 체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음인은 사상이론에서 소양인과 반대로 신대비소(腎大脾小,신장 기능이 발달하고 비장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짐)하다고 하는데, 소음인은 신장이 발달해 점액 분비가 많다고 본다.
아무튼 이러한 접근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동양과 서양에서 체질에 따라 인간을 네가지로 구분했다는 점은 신비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