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문화제

종친 2009. 5. 5. 14:18


포은문화제를 계기로 용인이 '동방성리학의 성지'
재인식되길 기대하며, 포은선생의 위업을 재조명하는 행사로
마련하였다.


주요행사인 포은선생 천장례(遷葬禮)행렬 재현, 추모제례
(追慕祭禮)는 용인이 동방의 예학(禮學)을 대표하는 지역임을
보여준다.


전국한시대회, 전국학술대회, 백일장대회, 그밖의 여러
전통문화예술공연은 용인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다.
취지 :
문화관광부에서 2003년 6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선생의 높은 충절과 선비정신의 표상을 널리 기리고자 용인문화원과 충렬서원은 기념사업(행사) 계획의 일환으로 용인지역의 문화적인 의미를 부여한 지역축제로 발전시켜서 연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함

행사내용 :
일시 : 매년 5월경(3일간)
장소 : 모현면 정몽주 선생 묘역
주요행사 : 청소년백일장/청소년국악경연대회/포은선생천장행렬/포은선생추모제례/
      전국한시백일장대회/각종무대공연 등  

2009년 행사

포은 정몽주선생을 기리는 ‘포은문화제’가 15일부터 17일까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포은 선생 묘역 일대에서 열린다. 포은의 절개와 충정을 기리는 이 행사는 15일 개막제에는 지역 청소년들의 무대가 펼쳐지며, 16일은 풍덕천에서 능원리까지 천장행렬과 추모제례 후 김덕수 사물놀이, 퓨전국악연주, 드림피플 중창공연 등의 행사가, 17일에는 충렬서원 ‘향사’와 함께 전국한시백일장, 경기민요 공연, 예원춤너울무용단 등 주요 행사가 펼쳐진다.




서울 판교에서 오시는 분은 분당동과 태재고개, 오토터널 통과 후 150m 지점에서 능평 2리
(이정표 우측)로 빠져서 직진, 능골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00m 지점에서 좌회전

수원, 수지, 죽전에서는 43번 국도로 광주로 가다 능원리(이정표 우측)로 빠지면 바로 레이크사이드
후에 박물관 이정표가 나옵니다.

판교 I.C에서는 20분 죽전에서는 7분 거리입니다. (승용차일 경우)





서울
양재발 ( 1500번, 1500-2, 500-3 ) : 양재↔분당↔능골삼거리↔에버랜드
잠실발 ( 119번, 17-1번 ) : 잠실↔성남↔분당↔능골삼거리↔광주
모현면 능원리 능골 삼거리에서 하차, 수원쪽으로 300M. 포은 정몽주 선생 묘소 입구에서 다리 건너 600M (능골삼거리에서 랜트카 이용 가능-요금 2000원)

수원
수원발 ( 60번 ) : 수원↔수지면(풍덕천)↔대지고개↔정몽주 선생묘소↔광주(43번국도)
정몽주 선생 묘소 입구에서 하차, 다리 건너 600M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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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과거시험 답안지 첫 발견

기사입력 2009-03-05 16:13


도현철 연세대 교수 발견..'홍건적 퇴치법'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고려 말기의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가 과거시험 때 제출한 답안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연세대 사학과 도현철 교수는 정몽주의 대책문(對策文) 필사본을 일본 호사(蓬左) 문고에서 발견했다고 5일 밝혔다. 대책문이란 과거시험 때 제출한 답안을 말한다.

동국이상국집을 쓴 이규보(1168~1241), 명 문장가로 원나라까지 이름을 떨친 최해(1287~1340) 등 고려 문신들의 대책문이 일부 발견된 적이 있지만 포은의 대책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 공민왕 9년에 시험을 치른 정몽주는 당시 빈번하게 국경을 넘어오던 홍건적(紅巾賊) 대처법을 6쪽 분량으로 제시, 수석합격의 영예를 안았다.

도 교수는 이 대책문에 "홍건적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강태공이나 제갈량처럼 당시 문무 겸용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정몽주의 주장이 소개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주나라 이전에는 문과 무가 일치했다. 문무를 함께 쓰는 것이 모든 왕이 따라야 할 대법(大法)이었다. 그러나 수(隋) 당(唐) 등을 거치면서 이런 전통이 무너졌지만 이제는 이 같은 전통을 복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지난해 연구차 방문한 일본 호사 문고에서 94쪽 분량의 '책문'(策文)이란 과거시험 기출문제집을 발견했으며, 이 가운데서 정몽주의 답안을 찾아냈다.

그는 "이 책문에는 고려 말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 과거 시험 답안이 실렸다"면서 "중종 때 답안까지 기록된 점에 비춰 조선 전기 기출 문제집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문집에는 정몽주 외에 이색(1328~1396), 이손(1439~1520), 이영은(1434~1471) 등 주로 고려말 유학자와 조선 사림파 계열 문인 10여명의 답안이 실려있다.

도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과거시험 기출문제집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이 책문집은 개인 사가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려의 중요한 문서가 보관된 충주서고가 불타면서 고려시대 서적이 상당수 유실된 걸로 알려졌으나 일본 각지에 고려 문서가 일부 흩어져 있는 걸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홍건적 퇴치법'을 적은 정몽주의 대책문을 오는 20일 한국중세사학회가 주관하는 학술대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최초로 발견된 정몽주의 과거시험 문제 답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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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물 100인 시리즈 기념메달 출시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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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임고서원과 철불 전통가옥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
김환대 (woon5400)

'경북 영천' 하면 알려진 인물로 '포은 정몽주' 선생이 계신다. 특히나 포은 선생의 관련 유적이 있는 임고서원을 지난 5월 31일 찾았다. 도로변에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어 찾는데는 무리가 없다.

정몽주 선생관련 서원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은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에게 살해 되었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복원하였다.

▲ 임고서원 영천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 김환대
임고서원

앞에는 서원의 역사와 같이 하듯 은행나무가 있는데,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본래 이 나무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없어진 임고서원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 은행나무 수령 500년 이상으로 그 크기가 압도한다.
ⓒ 김환대
임고서원 은행나무

경북지역에서 보기 드문 철불

임고서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물 제513호 선원동 철불좌상이 있다. 철불은 대체로 통일신라 9세기 후기부터 고려시대 초기에 걸쳐 유행하게 되는데, 이 불상은 안정감 있는 신체 비례와 양감 있는 체구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 초기 불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단칸 보호각에 모셔져 있으며, 근래에 관리하는 절이 생겼다. 경북 지역에서는 예천 한천사 철불과 함께 보기 드문 철불상이다.

▲ 선원동 철불 경북지역에서 보기드문 철불인데 손과 일부 부분은 보수되었다.
ⓒ 김환대
선원동 철불

영화 촬영지로 소개된 곳

2006년 이병헌, 수애 주연의 <그해여름>이란 영화에서 소개된 영화 촬영지로 동네 가는 곳에 나무판에 작게 영화 촬영지라고 적혀 있다.

그곳에는 중요민속자료제107호 영천 정용준씨 가옥이 있다. 흔히 연정고택으로 알려진 곳인데, 스스로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여 '연정'이라 한다.

▲ 연정 영화 촬영 장소이다.
ⓒ 김환대
연정고택

연못에는 아직 이른 듯 연꽃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집에는 할아버지만 집을 지키고 계시는데 조선시대 가옥으로는 잘 지어진 큰 집이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할아버지와 나누고 돌아왔다. 이 주변 마을은 전통 가옥들이 많다.

▲ 정용준가옥 고가 내부 모습이다. 할아버지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 김환대
전통가옥

여유롭게 거닐며 둘러보는 것도 좋은 아늑한 마을이다. 정자와 고가옥들이 특히나 많은 영천 다시 한번 고가옥 답사로 찾아야 할 것 같다.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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