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국어

― 중국어는 이렇게 쉽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는 어느 나라 말일까요?”

1985년부터 중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나는 초급 중국어를 사십 번 정도 가르쳤다. 여기저기서 겹치기로 가르치다보면 일 년에 서너 번 가르치기도 예사였는데, 그때마다 첫 시간에는 늘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일본어요!”

대부분의 나그네들은 그렇게 대답한다.(나는 학생들을 나그네라고 부른다) 후후, 내 그럴 줄 알았지롱! 하지만 틀렸다. 흔히들 우리말과 문법적 구조가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에 일본어가 배우기 쉽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건 처음 시작할 때 얘기고, 사실 일본어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특히 존칭 어미 변화가 나올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자는 어렵지만 중국어는 너무 쉽다

전 세계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언어는 중국어다. 가끔 제법 센스가 있는 나그네들은(진리와 학문 찾아 나와 함께 그리움 여행 떠난 중국 나그네들!) 이 정답을 맞추어 나에게 보너스 점수를 받는 행운을 누린다.

“어떻게 알았지?”

“통빡이죠, 뭐! 가이더님(그러니까 나는 당연히 가이더!)이 물어보시는 폼이 그렇잖아요!”

하하, 아이구, 귀여운 것! 점수 일 점 더 플러스! 그렇다. 외국어를 배우는 첫번째 비결은 ‘통빡’이다. 통빡이 뛰어나야 한다. 점잖은 말로 하자면 판단력과 추리력, 그리고 응용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튼 전 세계에서 제일 배우기 쉬운 언어는 중국어다. 김용표한테 배우면, 그리고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딱 석 달이면 된다. 그럼 중국 사람과 똑같이 할 수 있다. 믿지 못하겠다고요? 허허, 이런, 이런…. 근데 사실인걸 어떡하죠? 이 책을 계속 읽어보면 최소한 50% 정도는 믿게 되실 겁니다.

우리는 보통 완전히 반대로 생각한다. 흔히들 중국어를 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왜 이런 착각을 할까? 언어와 문자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중국 문자, 즉 한자(漢字, 汉字)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글자다. 소리나는 대로 쓰는 소리글자가 아니라 뜻글자니까. 애써서 쓰는 법을 외워놓아도 툭하면 까먹는다. 나 같은 경우, 수업 시간에 판서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아주 천연덕스럽다. 조금도 부끄럽지가 않다. 왜냐하면 유학 시절 나의 중국 선생님들도 자주 그러셨으므로.(크크, 물귀신 작전?) 세계적인 석학이신 그 양반들도 종종 쓰는 법을 잊어버리실 정도인데 하물며 나 같은 속인(俗人)이야 일러 무엇하리요! 아무튼 한자는 어렵다. 그것도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렵다. 이가 갈린다. 그래서 나는 나의 나그네들이 중국 문학을 계속 공부하겠다면 보따리 싸들고 말린다. 정말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완전히 다르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나라나 자기 나라의 글을 모르는 사람이 꽤 된다. 근데, 그 중에서도 중국의 문맹률이 아마 전 세계에서 단연 최고일 거다. 아, 오죽하면 마오저뚱(毛澤東, 毛泽东)이 간체자(簡體字, 简体字)라는 걸 만들어 문맹률을 낮춰보려고 발버둥을 쳤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자를 모르는 중국 사람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 많을 게 틀림없다. 하지만 생각해보시라. 중국말 못하는 중국 사람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이 말은 누구나 믿겠죠?) 문자인 한자는 모르더라도 언어인 중국어는 아주 쉽게 배울 수 있다. 아시겠어요?

한자를 많이 알면 중국어가 어렵다

특히 한국 사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음, 그렇겠지. 아무래도 한자를 많이 아니까.’ 하하, 지금 속으로 그렇게들 생각하고 계시죠?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당? 한자를 많이 안다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중국어를 배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한자를 전혀 모르는 코쟁이(앗! 이런 경망스런 단어를 쓰다니! 하지만 비하의 뜻이 아니라 아주 친근한 의미여요?) 외국인들보다 훨씬 더 중국어를 못 배운다.

왜 그럴까요? 언어는 눈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울 때 자꾸만 문자를 먼저 보는 고약한 교육 방법에 길들여져있다. 이것은 다른 외국어를 습득할 때도 그렇지만, 특히 중국어를 배울 경우에는 치명타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문자인 한자를 먼저 보며 중국어를 배우는 건 그야말로 쥐약이다. 큰일난다! 왜냐하면 다른 나라 문자와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자는 너무나 익숙하니깐. 그래서 척 보면 척, 다 아는 것 같으니깐. 예를 들어드릴까요?

韓國人 韩国人, 中國人 中国人

어때요? 무슨 뜻인지 다 아시겠죠? 하하, 저거 한국인, 중국인 아냐? 저런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자신의 한자 실력에 득의양양하신 분들이 너무 많다. 애고고, 쯧쯧… 착각이어요, 착각! ‘한국인, 중국인’은 우리말 발음이지, 중국말 발음이 아니잖아요!

한자를 많이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단어의 중국어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는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하지만 처음부터 귀로 확인도 하지 않은 그 발음이 어뜨케(!) 입에 착, 숙달되어 술술술 말이 되어 나올 수 있겠는가! 언어는 뭐라고? 분명히 알아두시라.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언어는 사랑이다. 마음속으로만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표현이 되어 나와야만 진짜 사랑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속으로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면 말짱 꽝! 그건 언어가 아니다. 언어는 사랑을 전달하는 표현의 도구임을 잊지 마시라.

사연이 그러하니, 연세 지긋하시고 한자 많이 아시는 분들, 특히 서당 출신 어르신네들이 중국어를 배우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 분들이 열심히 배우셨다는 중국말을 사용하는 걸 들으면, 애공! 죄송한 말씀이오나 한국말을 하시는 건지, 중국말을 하고 계신 건지, 코미디를 하시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구먼요? 제가 이런 판이니, 중국 사람들이 어뜨케 그런 말을 알아듣겠어요? 네, 뭐라고요? 잘 알아듣더라고요? 하하, 착각하지 마시어요! 그건 전적으로 상대방 중국인의 탁월한 통빡 실력 덕택일 테니깐.

한자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은 중국어를 아주 쉽게 금방 배운다. 왜? 첫째, 한자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둘째, 그러므로 선생님이 테이프를 듣고 외워오라고 숙제를 내주면 글자는 쳐다보지도 않고(크크, 쳐다봐도 모를 테니깐) 무조건 아주 무식하게 외워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한자 실력은 그 외국인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 그러나 코쟁이 친구들은 별다른 선입견이 없지만, 우리 젊은 친구들은 ‘중국어’라면 거의 공포 반응을 보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몇 자 어렵게 배운 한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중국어도 무진장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그게 어디 그들뿐이겠어? 그게 바로 이 사회의 일반적 인식 아니겠어요?

아니다! 이제 분명히 알자! 중국어는 한자를 많이 알수록 오히려 배우기 어렵다. 한자는 어렵지만 중국어는 쉽다. 한자를 몰라야만 도리어 중국어를 아주 쉽게, 아주 빨리 배울 수 있다. 아니, 근데 우리는 여태껏 왜 잘못 알고 있었다죠? 흐흐, 한석 나그네 흥분하지 마사이다. 그건 네 탓이 아니라 순전히 잘못된 외국어 교육 방법 때문이니깐.

눈과 머리로 따지며 생각하는 외국어 교육! 그런 교육 방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죽어라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나라 국민들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생각해보면 해답은 저절로 나온다. 근데 모든 언어가 다 그렇겠지만, 중국어는 더욱 머리로 따지면서 배우면 안 된다. 가슴으로! 따스한 마음으로 느끼며 배워야 한다! 그걸 눈으로 머리로 따지며 배우니, 어려울 수밖에!!! 수이 나그네, 알겠느뇨? 따지지 말고 느끼며 배우세요?

한자가 그저 무섭기만 하신 이 땅의 젊은이 여러분! 중국어는 너무너무 쉽고 너무너무 재미있답니다! 두려워 말고 나를 따라 우리의 중국어 배움 여행길에 동참해보시라. 네? 못 믿으시겠다구요? 하하, 지금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으면 분명히 달라진다. 거짓말인가 아닌가, 계속 읽어, 보시죠!

귀로 먼저 들어야 중국어가 재미있다

눈으로 ‘한자’를 보지 않고 귀로 먼저 ‘중국어’를 들으며 배우기만 한다면,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 훨씬 더 쉽게 중국어를 터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에구, 에구! 이 책이 멀티미디어 교재라면 오죽 좋겠어요?! 이럴 때 제 기막힌 중국어 발음을 들려드리며 설명을 해야 되는데.(크크, 나는야, 팔불출 교수) 정 궁금하신 분은 제 홈페이지를 찾아오세요. 사이버 동영상 강의가 준비되어있으니 열심히 공부하시어요?(http://www.drkimchina.com)

그나저나 지금 당장은 우짠댜? 아직 중국어를 배우지 않으신 독자 여러분들 때문에 처음부터 중국어 발음 부호를 사용해서 설명드릴 수도 없고…. 게다가 중국어는 발음의 높낮이가 달라지면 뜻도 달라지니 이 일을 워쩔꼬…. 음―, 하는 수 없지, 뭐. 발음은 우리말로 대충 비슷하게 표기하고, 높낮이의 표시, 이른바 ‘성조(聲調, 声调)’라는 것도 대충 어영부영 내 맘대로 표시하는 수밖에. 자, 그람, 제가 하는 중국말이 무슨 뜻인지 통빡(!)을 최대한 발휘하여 맞혀보시어요. 준비하시고―, 쏘세요!

따(↘)항(↗)민(↗)구어(↗)! 참, 여기 나오는 성조 표시 설명을 해드려야겠군요? 중국어에는 성조가 네 개 있지요. 그걸 아래와 같은 요령의 김용표 버전(^^)으로 임시 표기할 테니, 여러분도 임시로 대충 어영부영 알아두시와요.

(→) : 배를 순간적으로 살짝 집어넣으며 ‘높은 도’의 음계로 높고 세게 발음.

(↗) : 발음할 때 뒷부분을 귀엽고도 경쾌하게 살짝 들어올리며 약하게 발음.

(↓) : 소리를 툭! 떨구어 아주 낮고 작은 소리로 발음.

(↘) : 시작할 때는 (→)과 같지만 뒷부분은 번지점프하듯 떨어지며 발음.

자, 답답하시겠지만 우선 대충 적당~히 추리하며 읽어보세요. 참! 앞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발음 뒤에 성조 표시가 없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건 경성(輕聲, 轻声), 가볍게 발음하라는 뜻. 근데 이따금 경성이 아니라도 성조 표시를 안하고 지나친 경우도 있지요. 예컨대 이 밑에 나오는 [이/따/리(↘)]와 같은 경우. 이때, ‘이’나 ‘따’는 경성은 아니지만 성조 표시를 안 했답니다.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시각적으로 장애가 될 수도 있걸랑요. 그렇겠죠?

“대~한민국!” 내 중국어 발음이 끝나기도 전에 나그네들은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합창한다. 그리곤 다같이 화들짝, 왕방울 눈! 오머, 오머! 이거 ‘대한민국’ 아냐? 하하, 누가 아니래염? 그렇다. 지난 월드컵 기간 동안 모두들 목청 높여 외쳤던 바로 그 대한민국이다. 어머, 어머, 어쩌믄 발음이 이렇게 비슷하대? 후후, 놀라기엔 아직 이르나이당? 자, 계속 들어보시죠!

쭝(→)구어(↗), 항(↗)구어(↗)!

하하하, 호호호! 이건 ‘중국, 한국’이잖아요! 그렇다. ‘대한민국’도 그 즉시 맞혔는데 두 글자나 줄어든 ‘한국’을 못 맞힐 리 없다. 지금 이런 책이 아니라 직접 발음을 들으면, 누구나 아주 쉽게 금방 맞힌다. 이야, 나그네 여러분, 혹시 전에 중국어 배우신 거 아니에요? 어쩜 이렇게 척척박사? 그람, 어디 그 다음도 맞힐 수 있나 없나, 한번 해볼까요?

메이(↓)구어(↗), 잉(→)구어(↗)!

‘메이’라고? 음, ‘m’으로 시작하는 걸 보니까, 으음―, 그래 미국이구나. ‘잉구어’라고? 이거야 뭐, 영국이겠지. 하하, 귀신같이 맞힐 수 있다. 자, 이번엔 조금 고난도 문제예요.

파(fa)구어(↗), 더/구어(↗)!

음? ‘f’로 시작한다? 그럼―, 그래, 이거, 프랑스겠구나! ‘d’? 이건, 맞아! 독일 아닐까? 하하! 이번에도 다 맞았다! 또 다른 거!

이/따/리(↘), 쑤/리엔(↗), 르/번(↗)

깔깔깔! 이태리, 소련이네, 뭐! 이건 너무 쉽다! 으음? ‘르번’이라고? 요건 조금 아리송한걸? 그래도 눈치 빠른 70%의 학생들은 맞힌다. ‘일본’요! 그래요, 자알 맞혔어요! 자, 그럼 한 단계 up-grade된 문제를 풀어볼까요?

쭝/구어/렌(↗), 항/구어/렌(↗)!

(이럴 때 선생님은 학생들의 통빡을 길러주기 위해 손짓으로 이 ‘사람(!)’ 저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발음하면 좋겠죠?)

하하하! 모두들 폭소를 터뜨리며 맞힌다. ‘중국 사람’ ‘한국 사람’요! 아이구, 귀여워라, 또 다 맞혔네? 그람, 이번엔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윈(↘)뚱(↘)!

(이럴 땐 선생님은 가볍게 달리기 포즈나 역기를 들어올리는 포즈를 취해주면 어떨까요?)

나의 귀여운 나그네들은 고개를 갸우뚱,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반 수 정도는 ‘아아~!’ 탄성을 지르며 맞힌다. 그래, 운동이야, 운동! 그런데, 중국어는 너무 고맙다. ‘운동’이라는 명사도 되고, ‘운동하다’라는 동사도 되고, ‘운동하는’이라는 형용사도 된다. 품사가 바뀌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우와! 이렇게 신기하고 고마울 수가! 따로 품사 변화를 외울 필요가 없다니! 자, 자! 조용, 조용! 흥분을 가라앉히고 계속 문제를 풀어봅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국어가 월매나 재밌는지 어서 빨리 확인해보자구요!

윈/뚱(↘)창(↓), 윈/뚱(↘)쉬엔(↗)서우(↓)!

이미 ‘운동’이라는 걸 알았으니, 그 다음은 식은 죽 먹기! 하하하, 다들 폭소를 터뜨리며 운동장요! 운동선수요! 자신의 중국어 실력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중국어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하지만 코쟁이 양반들은 이런 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국어는 절대로 배울 수 없다. 왜 그렇죠? 가이더가 직접 겪은 경험담 스토리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아~! 중먼 다이학?!

20년 전 홍콩에 처음 놀러갔다. 그 당시 영국 조차지였던 홍콩은 중국 대륙 전역에서 북경어가 제일 안 통하는 지역이었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로는 물론 중국어가 첫 번째 공용어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자신들의 언어인 광동어와 영어가 공용어였다. 교육을 제법 받은 사람이라도 북경어는 천천히 말해주어야 조금 알아듣는다. 말하는 건 거의 젬병이다. 발음이 절뚝절뚝, 말도 아니다! 모든 추리력과 상상력을 다 동원해야만 간신히 알아들을까 말까다. 아무튼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中文大学!”(홍콩에 이런 대학이 있다. 유명한 대학이다.)

물론 표준어로 말했다. 내가 어디 광동어를 알아야 말이지. 표준어 발음은 대충 이렇다.

“쭝/원(↗) 따(↘)쉬에(↗)”

앗, 그런데, 못 알아듣네? 아니, 이렇게 쉬운 말도 못 알아듣다니! 뒤늦게 운전사 얼굴을 쳐다보니, 맙소사! 일흔쯤 되어보이는 할아버지다! 이 일을 우짤꼬! 이미 택시는 꽤 많이 움직여 내리기엔 너무 늦었다. 다급해진 김용표, 오랜만에 혀에 빠다(!)를 발라 어줍잖은 영어를 내뱉아보았다.

“Let's go to Chinese University!”

아이고, 이 할아버지! 그래도 어리벙벙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어뜩하지? 어뜨케 이 위기를 벗어나지? 등에 진땀이 흐른다. 글씨를 썼다. 한자는 북경이나 홍콩이나 똑같으니까.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 중국의 문맹률이 얼마나 높은지 조금 전에 한참 떠들지 않았던가! 할아버지, 까막눈이셨다. 아하, 이런! 그래, 맞어! 지도를 보여줘야지! 근데 아무리 찾아도 지도가 안 보인다.(있어봤자 할아버지에겐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이리저리 온갖 수단을 동원하다가 드디어 포기! 아무래도 안되겠다, 내릴 수밖에. 부아가 치민 김용표, 내리기 직전 볼멘 소리로 외쳤다.

“아, 중문대학도 몰라요, 중문대학!”(당연히 한국말!)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할아버지도 같이 소리를 지르며,

“아아~! 중먼 다이학?!”(이건 광동어!)

택시는 쏜살같이 중문대학으로 날아갔다. 이게 무슨 사연이냐고? 바로 여기에 우리 한국 사람이 중국어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울 수 있는 비결이 숨어있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결

우리 한국어에는 중국 한자로 된 단어가 상당히 많다. 명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근데 그 독음이 어디서 왔을까요? 바로 옛날 중국어 발음인 것이다. 조금 폼 나게 표현하면 당(唐)나라 때의 발음이 현대 한국어의 한자 독음에 유보(留保)되어 있다는 얘기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까 그 까막눈 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광동(廣東, 广东) 등, 변방 지역으로 흘러들어간 그 단어의 독음은 그 후로도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반면, 정작 중원(中原)에서의 발음은 여러 가지 영향을 받아, 일부는 아주 많이 변하고, 일부는 원형을 추리할 수는 있을 정도로 적당히 변해버린 것! 때문에 당시(唐詩, 唐诗) 같은 것은 우리나라 발음으로 낭송할 때 오히려 원음(原音)에 훨씬 더 가깝다. 암튼 한국인이 처음 듣는 중국어 단어라도 그게 무슨 뜻인지 금방 유추해낼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사연이 숨어있기 때문. 자! 이젠 ‘중문 대학’과 ‘중먼 다이학’에 숨은 내력도 이해가 되시죠?

그러므로 옛날 중국어 발음이 어떤 변화를 거쳐 현대 중국어 발음으로 바뀌게 되었는지 몇 가지 계통의 변화만 익히게 되면, 그 외의 중국어 단어 발음들도 한국인이라면 매우 손쉽게 귀와 입에 익힐 수 있다. 그 중 한두 가지만 살짝 가르쳐 드릴까?

첫째, 가장 큰 변화는 현대 중국어에서는 입성(入聲, 入声)이 소멸되었다는 사실! 근데 가이더님, 입성이 뭐죠? 옛날에 배우긴 배운 것 같은뎅…. 하하, 다 아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려드리는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릴까? 입성이란 ‘-p’, ‘-t’, ‘-k’로 촉급(促急)하게 끝나는 소리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압’, ‘앗’, ‘악’ 등 아주 급하게 끝나는 받침소리다. 기억나시죠? 그람, 어떻게 소멸되었다는 건지, 예를 보여드릴까요?

한국, 중국 →항(↗)구어(↗), 쭝(→)구어(↗)

어때요? 금방 이해가 되시죠? 현대 중국어에 입성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언어가 발전했다는 뜻. 위의 발음을 읽어보시라. 한국! 중국! 하면, 딱딱 끊어지는 맛이 나죠? 그런데, 항(↗)구어(↗), 쭝(→)구어(↗) 하면, 떼구르르 굴러가는 느낌이 난다. 그만큼 발음할 때 힘이 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흔히 중국어를 들으면 “아이구, 짜장면 냄새! 뙈놈들 말은 아주 웃겨!”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요즘은 그래도 중국과 많이 친숙해진 탓에 안 그렇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이 중국어를 듣기만 해도 창경원 원숭이 쳐다보듯 까르르 웃으며 신기해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으면 더 놀란다. 싸우는 줄 안다.(하하, 경상도 사람들이 말할 때는 더 그래요!) 왜 그럴까? 바로 입성 때문이다. 우리도 홍콩 가는 비행기를 타보면 갑자기 너무 시끄러워진 느낌을 받는다. 승객들 중에 홍콩 사람들이 많기 때문. 이게 모두 한국어와 홍콩어, 즉 광동어에는 입성이 살아있다는 증거겠죠?

둘째, 한국어에는 남아있는 ‘-l’, ‘-m’ 받침이 현대 북경어에는 없어졌다. ‘-l’은 완전히 소멸되었고, 한국어의 ‘-m’ 받침소리는 ‘-n’ 받침으로 바뀌었다. 또 ‘g-’로 시작하는 발음은 현대 중국어에서도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와 구개음화 현상을 일으켜 ‘j-’로 바뀐 경우가 있는 것이다. 아이고, 갑자기 왜 머리에 쥐가 나는 거지? 그런 분들을 위해 쉽게 말씀드리자. 김용표의 ‘김(金)’의 경우, ‘ㄱ’은 ‘ㅈ’으로 바뀌고, ‘ㅁ’ 받침은 ‘ㄴ’ 받침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김(우리나라 발음, 고대 중국어 발음의 근사치) → 진(현대 중국어 발음)

결혼, 결혼하다 → 지에(↗)훈(→)

물론 그 사이에 끼어있는 모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것까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그러자면 너무 복잡해져 진짜로 머리에 쥐가 나기 때문이다. 암튼 이런 식으로 몇 가지 변화하는 패턴만 귀에 익히면 중국어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금방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런 트레이닝을 어떻게 밟느냐 하는 건데….

아, 그러니까 앞에서 미리 말하지 않았나요? 김용표 가이더한테 삼 개월만 배우면, 그리고 하라는 대로 미친 척 따라하기만 하면, 중국 사람과 똑같이 중국말을 할 수 있다니깐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중국어의 놀라운 효과를 보고도 못 믿으시겠남요? 쩝…. 아직 안 믿어지시는 분은, 쪼끔 더, 함께 여행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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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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