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중국은 이중 언어 구조

― 중국어를 바로 알자


“가이더님! 우리는 왜 시골로 가는 거예요?”

항의(!)하는 나그네들의 볼멘 소리다. 몇 년 전 나그네들을 인솔하고 중국 남방에 있는 항주(杭州)라는 도시로 연수를 갔다. 떠나기 전 나그네들의 반발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뭐가 불만이지?

“가이더님, 우리는 왜 북경 안 가요? 그런 시골에 가서 사투리 배워가지고 뭐해요?”

아하, 이게 불만이었군. 짱구 나그네들 같으니라구. 수업 시간에 분명히 설명해준 것 같은데 말이야, 말이야….

중국은 또 하나의 작은 세계, 없는 게 없다

학생들의 이런 터무니없는 불만은 중국과 중국어에 대한 기초 상식 부족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중국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 아니, 모르는 정도가 아니다, 차라리 모르면 50점이나 맞게? 지레짐작으로 엉뚱하게 잘못 알고 뻘소리에 흰소리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안 된다! 이제는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중국은 남의 동네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와 다름없다. 중국을 모른다는 건 우리 자신을 모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가이더님, 뙈놈들 얘기가 왜 우리 이야기란 말이에요? 쭝국은 쭝국이고 우리는 우리지. 월드컵 때 을마나 열받게 만들었는데….

아니다. 김용표가 중국을 전공으로 공부하다보니 사대주의(事大主義, 事大主义)에 빠진 게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병폐는 편가르기다. 흑백 이분법 논리에 빠져 지나치게 편가르기를 즐긴다. 남북 편가르기도 모자라 동서를 편가르기하고, 툭하면 종교와 사상을 편가르기하여 쌈박질을 취미생활로 즐긴다.

이제는 이 땅에 만연해있는 투쟁과 대립, 정복의 논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생각해보시라. 서구 사람들에게 그리스 로마는 필수 기초 상식이다. 남의 걸 공부하자는 게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뿌리를 공부하자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중국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말이 틀린지 아닌지,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첫번째 필수 기초 상식! 우리는 흔히 중국을 한 ‘나라(國家, 国家)’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은 ‘나라’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보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쉽다. 중국은 고립된 ‘닫힌 세계’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를 다른 말로 ‘동양’이라고 부른다. 먼저 이곳 동양의 자연 환경을 살펴보실까요? 서남쪽으로는 하늘 높이 치솟아있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가 있다. 이어서 서북쪽으로 청장(靑藏) 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그 뒤로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불모지가 원을 그리며 이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 남으로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울창한 정글! 그리고 동쪽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바다, 짙고 푸른 태평양이 가로막고 있다. 이곳이 바로 ‘닫힌 세계’ 동양이다.

이곳에서는 천재지변이 끊일 틈이 없다. 태풍과 지진, 홍수와 한발로 매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명과 재산이 희생된다. 게다가 여름이면 말도 못하게 덥고, 겨울이면 뼈가 시리도록 춥다. 살기 편한 유럽 대륙,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지중해를 넘어 끝없이 뻗어나갈 수 있었던 서양과는 달리, 극한의 자연 환경에 의해 완전 포위된 곳! 외부 세계와는 철저히 차단된 고립된 땅덩어리, 그곳이 바로 동양인 것이다.

그 중심이 어디인가? 바로 중국 아닌가? 우리 한반도도 그 동양의 일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니, 부정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도 또 우리 나름대로의 특징과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이더니…임. 근데 좀 흥분하신 거, 아니와요? 음, 영미 나그네, 무서워할 필요 없느니. 가이더가 정열적으로 강의, 아니, 여행지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면 원래 좀 그런답니당~!(^^)

암튼 고립된 또 하나의 세계, 동양은 독자적인 문화를 충분히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땅덩어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 무대가 되는 땅, 중국 대륙에는 그래서 없는 게 없다. 문화도 너무나 다양하다. 만리장성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것도 있고, 성능 좋은 돋보기로 들여다봐야 하는 깨알보다 더 작은 예술 조각품도 있다. 어흠, 내 백발(白髮, 白髮)은 삼천장(三千丈)이니라! 어휴, 가이더님, 중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뻥이 세요? 하하, 희섭 나그네는 중국문학에는 과장법만 있는 줄 아는구먼. 중국 고전문학의 가장 중요한 흐름은 뻥치는 게 아니라, Realism이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그래서 지금 가이더가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 그러므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중국, 죄송하지만 그 중국은 십중팔구 코끼리가 만진 장님, 아니 장님이 만져본 코끼리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중국을 조금 공부하고, 중국을 몇 번 다녀오면 누구나 전문가가 되어 이 사람은 이 말 하고, 저 사람은 저 말 한다.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하나의 개념으로 중국을 정의(定義, 定义)하려고 하면 크게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거다.

아니, 이럴 수가! 조선말이 중국어라고?

이제 구체적으로 중국말 기초 상식 이야기를 해보자. 으~, 본격적으로 중국말 공부하는 건 싫은뎅~. 하하, 예지 나그네, 공부하자는 게 아니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용. 몰라서 그렇지, 이 부분에서도 사실은 무지무지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단다. 하나만 먼저 해볼까? 혹시, 조선말도 중국말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염? 뭐라구요? 조선말이 중국어라구요? 아니, 누가 그런 소릴 해요? 중국 사람이 그래요? 말도 안 돼!

하하, 예원 나그네, 열 받으실 필요 없나이당. 중국말에 대한 기초 상식을 알게 되면 공연히 흥분했다는 게 멋쩍어질 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어쩌면 흥분할 사람은 여러분이 아니라 바로 나인지도 모른다. 내가 중국말과 중국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라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종종 아래와 같은 질문을 퍼부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니까.

중국은 땅덩어리가 그렇게 넓으니깐 사투리가 무진장 심하겠죠? 근데 그 중에서 무슨 말을 가르치는 거예요? 듣자하니 북경어가 표준어라는데, 또 듣자하니 교수님은 대만에서 공부하셨다구요? 그람, 교수님한테 배우면 대만 사투리나 배우지 않겠어요? 대만에서 배웠으니 교수님 발음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을라구요…. 뭐 그런 얘기다. 쩝…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구먼. 하지만 굳이 대답이 듣고 싶으시다면…. 에구 에구, 그람, 어디 변명이나 한번 해볼까?

오늘날의 중국은 이중 언어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 그 얘기를 하려면 ‘중국어’의 개념과 범위, 그리고 우리가 배우려는 중국어는 무엇인지, 먼저 그 정체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중국어’란 무엇인가? 에이, 것도 몰라요? 중국 사람이 하는 말이죠, 뭐.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 사람 종류가 너무 많다는 데 있다. 미국은 United States다. 한자로 폼 나게 말하자면 미합중국(美合衆國, 美合众国)이고, 막말로 말하자면 ‘짬뽕’(비속이 아니라 친근의 의미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함!)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 짬뽕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무려 56개나 되는 민족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 아니, 어뜨케 그렇게 많은 민족이 있대요?

하하, 아까 얘기했죠? 중국은 한 ‘나라(國, 国)’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세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중국은 우리 같은 황인종만이 사는 한 ‘국가’가 아니다. 별의별 오만 가지 인종들이 다 모여 사는 작은 세계인 것이다. 노랗고 하얗고 파랗고 빨갛고 까만 피부와 눈동자의 56개 민족, 13억이 넘는 인간들이 대륙 땅 여기저기 별의별 사연으로 서로 엉켜 함께 모여 살고 있다. 이제 중국이 또 하나의 작은 세계라는 말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히시죠?

아무튼 그 인구의 90%에 달하는 절대 다수가 한족(漢族, 汉族)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명칭은 한어(漢語, 汉语)!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나머지 55개의 소수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Sino-Tibetan 계통에 속하는 한어와는 완전히 다른 계통의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 소수 민족 중의 하나인 몽고족이 쓰는 몽고어와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가 그렇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몽고어나 조선어는 Ural-Altai어 계통에 속하니까.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56개의 민족들이 사용하는 모든 언어를 몽땅 중국어라고 부른다. 그러니깐 몽고말도 조선말도 모두모두 중국어란 말이다. 아니, 어째서요? 간단한 이치다. 조선족도 중국에 살면 중국 사람이니까. 근데 중국 사람이 하는 말은 몽땅 중국말이니까. 약오르지? 으윽, 이럴 수가! 우리 조선말을 지네 중국말로 집어넣다니! 공연히 흥분할 필요는 없다. 흥분하는 사람만 손해니깐. 억울하면 중국에 사는 모든 조선족들이 깡그리 국적을 바꾸면 된다. 그럼 중국말이 아니니깐. 아무러나 그건 광의(廣義, 广义)의 개념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국어’란 단어의 개념은 협의(狹義, 狭义)의 것이다. 중국어란 드넓은 중국 대륙의 어느 민족, 어느 지방에서도 통용되는 이상적인 표준 공용어를 말한다.

그런데 흔히들 이 부분에서 아주 커다란 착각을 한다. 모두들 중국의 표준 공용어는 북경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분명히 알아두시라. 중국의 표준 공용어는 북경어가 아니라 ‘북경 관화’! 영어로는 만다린(Mandarin)이라고 한다.(만다린? 우리 집 앞 짱꿰집 이름 아냐?) 아니, 그람, 그 수많은 교과서의 표지와 중국어 학원 간판에 폼 나게 써 붙인 ‘북경 중국어’라는 건 뭐죠? 사기치는 건가요? 그리고 또, 북경 관화라? 관화라니, 그건 또 뭔 소리예요? 신발 이름인가요?

북경어는 북경이라는 한 지방의 사투리이고, 관화(官話, 官话)란 관청에서 사용하는 언어, 즉 지배층의 언어라는 뜻. 그러므로 북경 관화란 북경 지역에 살고 있는 지배층의 언어라는 뜻이다. 애고, 전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에요! 북경어나 북경 관화나, 그게 그거지, 뭐.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다 말꼬릴 잡으세요? 하하, 낙비 나그네. 넌 이름도 무협 소설 주인공 같아서 그렇게 대범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그게 아니란다. 양자(兩者, 两者)는 따지고보면 하늘과 땅 차이, 실로 천양지차(天壤之差)란다. 뭐가 그리 차이가 나겠느냐고? 자,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북경 관화가 중국 전체에서 통용되는 표준 공용어가 된 사연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말해주마. 그럼 너도 그 엄청난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뭬라? 게다가 북경어가 표준말이 아니라고?

공용어는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춘추전국(春秋戰國, 春秋战国) 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다. 이 얘기를 하려면 또 희발(姬發, 姬发)이라는 사람 얘기부터 해야 한다. 희발이가 누구냐고?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신나게 노셨던 상(商)나라의 마지막 임금님 주(紂, 纣)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운 양반이다. 아무튼 그 양반은 나라를 세우고 봉건제(封建制)를 채택하여 자기 동생들, 친척들, 그리고 사돈의 팔촌과 팔촌의 팔촌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첫번째 상식! 그런 사연으로 수많은 제후국들이 탄생하였는데, 그 제후들의 성씨(姓氏)가 그래서 처음에는 모두 희(姬)씨였다는 사실이다.(나중에는 점차 성을 바꾸었지만) 아, 참! 근데 제(齊, 齐)나라만큼은 처음부터 강씨(姜氏)였다. 주나라의 무왕(武王)이 된 희발이가 개국 일등공신인 강태공에게 주었던 땅이었으니깐.

두번째 상식! 또, 그런 사연으로 비록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어도 제후들끼리는 서로 말이 통했단다. 그럴 수밖에! 원래 같이 놀던 한 집안 식구 아니더냐! 그때 그들의 말을 ‘아언(雅言)’이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지배층이 사용했던 언어인 것이다. 그 당시 말 잘하는 세객(說客, 说客)들이 이 나라 저 나라 기웃거리며 제후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아언이라는 공용어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세번째 상식! 또 또 그런 사연으로, 서로 같은 동네에 산다 해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그럴 수밖에. 지배층은 원래 그 동네 사람이 아니었으니깐. 이해가 가시는가? 통과!

그렇게 오랜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부터 존재했던 공용어의 개념이 그 후 역대 왕조 때라고 왜 없었겠는가? 황제들은 우선 당장 자신들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공용어가 필요했을 게다. 그러므로 공용어란 언제나 철저히 지배층의 언어일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그 얘긴 그쯤 해두고, 북경 관화가 공용어가 된 건 언제부터일까? 하하, 간단하지, 뭐. 북경이 중국의 수도가 되었을 때부터다. 북경이 한족이 세운 통일 중국의 수도가 된 건 명나라 영락대제(永樂大帝, 永乐大帝) 때의 일. 그러니까 공용어로써의 북경 관화는 약 600 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는 이야기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공용어로써의 확고한 위치를 다졌던 북경 관화도 위기의 시절이 있었다. 1911년 쑨원(孫文)이 중화민국을 세우고 남경(南京)을 수도로 정한 뒤, 공용어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즉, 쑨원을 정점으로 한 신흥 남방 세력이 명청 시대 이래 수백 년 동안 도읍지를 담당한 북경의 구 지배 계층 세력을 밀어내려 한 것.

중국의 몇몇 영어 지명을 보면, 그 흔적을 다소나마 엿볼 수 있다. 중국의 수도, 북경! 그 영어 이름은 그러나 북경어 발음인 Beijing이 아니라 광동어 발음인 Peking이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동양의 진주, 홍콩(香港)! 그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 Hong Kong도 광동어 발음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영국 사람들은 아직도 Chinese! 하면 Cantonese(광동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아두자.

그러나 중화민국의 교육부는 결국 북경 토박이 지배 계층 손을 들어주었다. 나라가 바뀌었다고 지배층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던 모양. 북경의 지배층 인사들은 마침내 남방 출신의 신흥 세력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사용하던 북경 관화를 표준 공용어로 지켜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야기 끝!

이제 북경 관화가 중국의 표준어가 된 사연을 분명히 아시겠죠? 뭐라구요? 그렇긴 한데, 북경어와 북경 관화가 아직도 좀 헷갈리신다고요? 허허, 이런, 이런…. 간단하게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드리죠. 우리나라 표준어는 서울 지역의 중․상류층이 사용하는 언어를 표준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어느 달동네 판자촌이나 토박이 깡패들이 사용하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 차이가 훨씬 더 심하다. 북경 관화는 표준 공용어이지만, 표준 공용어가 아닌 북경어는 일종의 지방 사투리나 다름없는 것이다. 대충 이해가 되셨으면, 음, 이쯤에서 진짜로 통과! 땅, 땅!

결론을 맺자. 우리가 배우는 중국어란 북경어가 아니라 북경 관화를 기틀로 만든 하나의 이상적인 표준 공용어이다. 그 표준 공용어를 중국에서는 ‘푸퉁화(普通話, 普通话)’, 대만에서는 ‘구어(↗)위(國語, 国语)’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상식으로 알아두자.

지금 중국은 이중 언어 구조

어떤 중국어 학원에서는 가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들었다. 너희 대학의 교수들은 대만에 유학 가서 공부했지? 난 북경에서 공부했다? 그러니까 내가 쭝국말(요럴 때는 꼭 ‘쭝’국말이라고 발음하더만) 더 잘한다? 그러니까 늬네 선생님은 나보다 못하는 거다, 알았지? 이런 양반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만, 입소문은 빠른 법.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자못 크다. 물론 중국말이야 그 양반이 나보다 더 잘하시겠지. 하지만 대만에서 공부했다고 표준 공용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경에서 공부한다고 표준 공용어를 더 잘하는 것도 절대 아닐 것이다.

대만에 처음 가서 택시를 탔다. 앗, 그런데, 택시 운전사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이거, 어뜨케 된 거냐? 김용표가 중국어를 순 엉망으로 가르쳐줬나보다. 으― 어디 두고 보자…. 여러분, 그러지 않아도 불쌍한 김용표를 엉뚱하게 원망하지 마라. 긴장을 풀고, 점잖게 “표준어로 말해주세요(물론 나한테 배운 표준어로 해야겠죠?)” 한마디 해보라. 상대방도 제까닥 표준어로 말해줄 테니까.

오늘날 중국은 거의 모든 곳이 이중 언어 구조를 지니고 있다. 표준 공용어로 채택되지 않은 나머지 각 지방의 언어는 자연적으로 방언, 즉 사투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해에서는 상해 말을, 사천(四川)에서는 사천 말을, 복건(福建, 福建)에서는 복건 말을, 대만에서는 대만 말을 사용한다. 조상 대대로 사용하던 언어가 아닌가!

그러나 표준 공용어는 똑같다. 어디서나 다 통한다. 걱정하지 마라. 왜냐하면 참으로 고맙게도 두 분의 절대 권력자―한 사람은 대륙의 마오저뚱,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에게 쫓겨 대만으로 도망가야만 했던 장지에쓰(蔣介石), 이 두 양반 덕분이다. 그들은 대륙과 대만에서 각자 강압적으로 표준 공용어를 강력하게 시행했다. 마치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일본어를 강요했듯이.

물론 북경 사람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경에 사는 ‘피지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됐다. 구태여 북경에 사는 ‘지배층’의 표준어를 안 배워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으니깐.(하지만 표준어만 배운 초짜 외국인이 처음부터 ‘피지배층’의 북경 사투리를 알아듣는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그러나 다른 지역 사람들은 달랐다. 사회에서 사람 구실을 하려면 무조건 표준 공용어를 새로 배워야 했다.(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의 홍콩은 예외였다, 영국 땅이었으니까) 자기 지방이나 자기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북경어와 크게 다르면 다를수록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잘 알아두시라! 표준 공용어를 잘하는 사람은 북경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열심히 표준 공용어를 익힌 사람인 것이다. 외국인은 이런 사람들이 하는 표준어를 가장 쉽게 알아듣는다. 정석대로 말하니까.

여기서 잠깐,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한마디! 요즘이야 워낙 남한 사람들과 빈번한 교류를 하다보니 연변(延邊, 延边) 말도 서울 말에 많이 동화되었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조선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남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작천에 상과할 적에 간난했지비….”

“???”

하하, 이게 바로 이중 언어 구조가 빚어낸 웃지 못할 현상이다. 여기서 ‘작천(昨天)’은 ‘어제’라는 뜻의 중국어 단어를 우리 말 발음으로 읽은 것이고, ‘상과(上課, 上课)’는 ‘수업하다’, ‘간난(艱難, 艰难)’은 ‘힘들다’는 뜻이니,

“어제 수업은 참 어려웠어….”

그런 뜻인 것이다. 한국말과 중국말을 다 알지 못하면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에 사는 화교들에게도 있다. 그들이 가끔 장난 삼아 하는 말,

“저우(ꀭ)자!”

한국 사람들도, 중국 사람들도, 죽었다 깨어나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가다’라는 뜻의 중국어 ‘저우(走)’와 ‘~하자’라는 한국어의 청유형 접미사인 ‘자’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얘들아, 가자!”

물론 가장 완벽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북경 지역의 지배층 인사들, 요새 말로 바꿔 말하자면 북경의 지식인들이다. 그들이 진짜 오리지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드물다. 오죽이나 드물면 진/피엔/즈(金片子: golden men)라고 불렀겠는가! 중국의 시골 사람들은 아직도 진/피엔/즈를 만나면 대단한 사람으로 여긴다. 우리의 순박한 시골 촌 아저씨가 서울의 경찰서에서 일한다는 순사 아저씨를 만나면 공연히 주눅들어하듯이. 음, 내가 딴 길로 너무 샜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항주에서도 우리가 배우는 건 표준 공용어야, 인마! 북경 가봐라, 길거리에서 들리는 북경 말을 너희들이 월매나 알아듣나? 항주 길거리에서 쓰는 표준어가 북경 길거리보다 오히려 너희들 귀에 더 잘 들릴걸?”

항주에 간 나그네들은 너무 행복해했다. “가이더님, 너무 고마워요, 너무 좋아요!” 표준어도 잘 통하고, 무엇보다 서호(西湖)를 에워싼 그림같이 아름다운 산수가 아이들을 뿅― 가게 만들었다. 그럴 수밖에! 중국의 대문호, 백낙천(白樂天, 白乐天)과 소동파(蘇東坡, 苏东坡)가 심혈을 기울여 가꾸어놓은 천하의 명승지요, 마르코폴로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한 바로 그 항주,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지상에는 소주(蘇州, 苏州)와 항주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杭 上有天堂, 下有苏杭)” 중국인이 자랑하는 그 항주가 아니더냐!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난 후, 나그네들은 나를 이렇게 원망했다.

“가이더님, 떠나려니 너무 슬퍼요! 왜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오셨나요, 흑흑흑.”

Posted by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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