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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쉬저우(徐州)에서 허난(河南)성을 향해 떠났다. 허난성 북부지역은 동쪽부터 서쪽까지 그야말로 역사의 고장이다. 상쳐우(商丘), 카이펑(开封), 쩡저우(郑州), 뤄양(洛阳)에 이르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코스야말로 출발 전부터 기대가 많았다. 작은 도시들을 거치지 않는 상쳐우콰이(商丘快) 버스(39위엔)를 아침 8시 40분에 탔다. 여전히 축축한 빗물이 조금씩 내리는 길을 4시간가량 달린다. 도착하자마자 지도를 샀다. 기차역(火车站)이나 버스터미널(汽车站)마다 여행객들을 향해 달려드는 상인들의 지도 가격은 제각각이다. 외국인이라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여지없이 비싸다. 보통 2위엔에서 3위엔 정도면 적당하고 지도가 좀 조잡하면 1위엔으로도 살 수 있다.
지도를 사고 터미널 앞에서 호텔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그냥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수준이나 가격이 다 비슷하다. 터미널 바로 옆 한 작은 호텔, 60위엔 방에 들어가니 생각보다는 안락해 기분이 좋았다. 지도를 펴고 바로 '뮬란'의 사당 위치를 찾았다. 지도에 무란츠(木兰祠) 사진은 있는데 가는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호텔 직원에게 물으니 멀다고 한다. 택시를 타면 아마 50위엔 이상 줘야 할 거란다. 택시를 잡아 얼마냐고 했더니 무란츠는 시내에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다른 택시기사가 뒤따라오기에 100위엔에 왕복으로 가자고 했더니 타라고 한다. 조금 지나 친구에게 가는 길을 물어 보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친구가 150위엔은 받아야 한다니 20위엔을 더 내라고 한다. 이렇게 장난하면 내린다고 했더니 그냥 가자고 한다.
취재를 하는데 꼬마 아이들 셋이 쪼르륵 피하더니 다시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온다. 아이 엄마들도 덩달아 구경삼아 따라 온다. 아이들에게 사진도 찍어주고 촬영도 하니 순박하게 웃고 떠든다. 역시 시골이라 아이들이 해맑다. 그런데 마침 가져간 선물, 슈촬(书签儿, 북마크)이 2개뿐이라 난감했다. 한국의 문양이 새겨진 것이라 설명하고 나니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해 더 고민이다. 마침 여자 아이가 가장 크다기에 여자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뚜웨이부치"(对不起)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웃으면서 괜찮다는 표정이다. 사당 위에 샤오리에지앙쥔츠(孝烈将军祠)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효성스럽고 용맹한 장군의 사당이라니 말이다. 무란츠에 있는 상치여우씨엔즈(商丘县志)에 따르면 뮬란은 성이 위(魏)씨다. 전쟁이 나서 모병이 있었는데 스스로 갑옷(甲)을 입고 투구(胄)를 쓰고 화살(箭)을 걸고 자루(囊)를 메고 연로한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을 대신했다고 한다.
이 사당은 당나라 시대에 처음 세워졌다 한다. 재미있는 것은 뮬란이 전설로 내려오는 것이라 정확하게 어느 시대 사람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성이 위씨라고 전해지는 것으로 미루어 북위 시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모병이 훈족의 침입이라는 점과 비슷하기도 하다.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뮬란의 전설을 백성들에게 우상화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무란츠 곳곳을 둘러보는데는 30분이면 족하다. 전설 속에 피어난 이야기 그 자체로 아름답다. 사당 안에는 뮬란과 그 가족의 동상이 나란히 있다. 3면벽에는 뮬란의 전설을 그려놓기도 했다. 비록 큰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사당의 모양새가 현대적 상품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따스한 햇살만큼 포근한 정원이 멀리까지 온 보람을 느끼게 한다. 중국 사람들과의 대화 역시 시골로 갈수록 더 순박해진다는 것을 느꼈으니 100위엔도 아깝지 않다.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합승을 해도 되겠냐고 한다. 두 사람을 더 태운 택시가 시내로 들어서자 자꾸 새로운 곳을 소개한다.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따로 갈 곳이 있다면서 상치여우구청(商丘古城)을 말했더니 거기도 20위엔이면 데려다 준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서자마자 내려달라고 했더니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다. 내일 연락하면 곧바로 오겠단다.
용기를 내 그 먹기 힘들다는 처어떠우푸(臭豆腐)에도 도전했고, 허기를 채우려 물 만두국과 비슷한 훈둔(馄饨) 한 접시도 비웠다.
2001년도에 베이징의 한 호텔 아침 뷔페에 나온 이것을 멋모르고 먹었다가 약간 곤란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아무렇지 않게 먹게 되니 그만큼 나도 중국에 적응을 했나 보다. 훈둔은 원래 전통 북방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오래 전 한나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음식인데 완전 밀봉된 만두 형태라 그 구멍이 전혀 없다는 의미로 훈둔(混沌)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발음이 비슷한 훈툰(馄饨)으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우리는 그 발음도 훈둔으로 그냥 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 전역에 길거리 음식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훈둔 전문식당도 꽤 많다. 만두에 약간의 국물을 부은 것인데 물기가 듬뿍 담긴 만두를 숟가락으로 하나씩 떠먹으면 맛이 제법 좋다. 북쪽부터 남쪽으로 거리를 걸어 남문을 나가면 호수가 있는 공원이다. 아이들은 공속에 들어가 물 속으로 뛰어든다. 중국 곳곳에 있는 물 위를 걷는 풍선이다. 물 위를 걷는 느낌이야 좋겠지만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더울까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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