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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덕숭산 등산 때도 그랬는데 가는 날이 또 장날이었다. 7월 11일,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결코 적게 내리는 비가 아니다. 그러나 일기예보를 또 믿어보기로 했다. 이날 충청지방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거봐! 내가 뭐랬어? 오늘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했던 친구들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이 탄 차가 안성을 지날 무렵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천안이 가까워지자 비가 그쳤던 것이다. 그쳤다기보다 이쪽은 아예 비가 내리지 않았는지 도로바닥이 보송보송해 보였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 위에는 검은 구름이 금방이라도 한줄기 비를 퍼부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주를 거쳐 대치터널을 통과하여 칠갑산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이거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이 품은 꽤 넓구먼." 장곡사를 찾아가는 길은 산을 반 바퀴나 돌아가는 길이어서 산세를 어림해볼 수 있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 왼편으로 굽이굽이 이어진 산줄기와 골짜기들이 아기자기한 풍경이었다. 등산은 장곡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후 시작했다. 주차장이 넓지는 않았지만 역시 평일이어서 텅 빈 주차장에는 우리들이 타고 온 승용차 외에 단 한 대가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일단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로 했다. 차를 이곳에 세워놓았기 때문에 하산도 어차피 이곳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 장곡사는 그때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아니 이런 등산로에 돌계단은 왜 만들어 놓는 거야? 이런 건 없는 편이 훨씬 좋은데 말이야." 등산로는 장곡사입구에서 오른편 산길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경사가 심하거나 위험한 길도 아닌데 특수 제작한 것 같은 모양의 불럭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오히려 걷기만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단 길도 잠깐이었다. 곧 울창한 숲과 완만한 흙길이 나타났다. 등산로는 계속 그런 길이었다. 날씨는 흐렸지만 숲 속을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주고 상쾌함을 더해준다. 그런데 정상이 가까워질 때까지 도무지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능선까지 울창한 나무들 때문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바라보이는 것은 오직 산길과 나무들뿐이었던 것이다. 어쩌다 나타나는 돌출된 곳에서만 잠깐씩 진면목을 보여주는 산세가 여간 깊은 것이 아니었다. "이 산 이거, 높이에 비해서 골이 깊고 굉장히 넓은 산이네." 일행이 감탄을 한다. 흙산에 경사까지 완만하여 등산은 쉬운 편이었지만 바라보이는 산세는 굉장히 넓고 깊어보였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능선 길에 줄기가 붉은 색이 도는 한솔들이 즐비한 것이었다.
높지 않은 산임에도 능선은 꽤 길고 완만하면서도 그런대로 굴곡이 다양하여 지루한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고 약간 가파른 경사를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꽤 넓었다. 정상 표지석이 서있고 주변에는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개 있었다. 정상 등반 기념으로 일행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근처 쉼터에 앉아 간식을 나누어 먹으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심신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정상은 시야가 시원하게 툭 트여 있었다. 우선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게 높직하게 솟은 오서산과 오서산이 거느린 긴 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남쪽에 솟은 보령의 성주산도 높아 보인다. "이 산 안내도 이거 정말 웃기는데. 이쪽으로 와봐." 일행 한명이 우리들을 부른다. 다가가보니 정상 한쪽에는 칠갑산 종합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안내도가 아주 특이했다. 산줄기 능선에 도시의 무슨 거리처럼 지천로, 장곡로, 사찰로, 산장로, 천장로, 도림로 하고 여섯 개의 주능선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었다.
이 산은 높이보다는 방대한 면적과 능선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심산유곡으로 이루어진 산이었다. 그래서 이 산의 정상에 올라 다섯 골짜기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내려다보면 그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숲 향기가 어느 산보다도 향기롭고 시원한 것이다. 또 골이 깊고 방대하여 오랜 옛날 백제가 멸망한 후, 한 때는 백제 부흥을 꾀하던 군대가 은거하기도 했으며, 조선조 말에는 면암 최익현 선생이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활동을 벌이기도 했던 곳이다. 충절과 의기가 깃든 산인 것이다. "아니 그런데 콩밭 매는 아낙네는 어디로 간겨. 왜 보이지 않지?" 일행들은 그때서야 이 칠갑산의 노래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콩밭 매는 아낙네는 저 쪽 공원 쪽으로 내려가야 만날 수 있는데요." 마침 근처에 있던 여성등산객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나 승용차 때문에 그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올라온 길을 되짚어 다시 장곡사 쪽으로 내려갔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 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가슴속을 태~웠소," 산길이 험하지 않으니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여긴 대웅전이 두 개야. 그건 하대웅전이고 저 위쪽에 상대웅전이 또 있을 걸." 내가 위쪽에 상대웅전이 있다고 가르쳐 주자 그는 위쪽으로 올라간다. 다른 사람들도 곧 뒤따라 올라갔다. 상대웅전 앞에는 수국 한 그루가 탐스럽고 아름답게 꽃을 활짝 피웠다. 불교신자인 친구는 법당 안에 있었다. 그 법당 안에는 세 개의 불상이 있었는데 그 중 한 개가 국보 58호인 철조약사여래좌상부석조대좌였다. 이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AD 850년)에 보조국사 체징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이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 사찰은 국보 300호 장곡사 미륵불괘불탱화와 보물 162호인 상대웅전, 181호인 하대웅전, 보물 174호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대좌, 보물 337호 금동약사여래좌상, 유형문화재 151호 설선당 등 드문 문화재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이들 중 국보 300호인 탱화는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대웅전과 다른 건물들이 자리 잡은 모습이 아주 아늑한 풍경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사찰은 대웅전이 두 개인 것으로 유명하며 칠갑산을 오르는 신도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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