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항구도시 중국 청도

동봉 2007. 5. 1. 10:27

"우와, 물고기가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가요!"
반나절 코스로 돌아본 아름다운 항구도시 중국 청도
조영님(jyeondang) 기자
지난 20일, 오후 1시가 되어서 청도역에 도착하였다. 청도역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잔교(棧橋 잔치아오)로 갔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우선 벤치에 앉아서 간단한 음식과 음료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청도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볼거리 중의 하나로 꼽는 곳이 바로 이 잔교다. 길이 440m, 너비 8m의 다리가 바다 위에 떠 있고, 다리 끝에는 누각이 하나 있다. 누각에는 물결이 굽이쳐 돈다는 뜻을 지닌 '회란각(回瀾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다리 밑에서는 무엇을 주웠는지 많은 사람들이 봉지에 연신 무엇인가를 집어넣고 있고, 소라며 불가사리를 파는 상인도 눈에 띄었다. 다리 한 가운데 쯤에 이르니 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며 제법 거세게 철썩거렸다. 누각 끝에서 보니 아득한 바다를 바라보는 맛도 괜찮았다.

그렇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긴 다리 위에 덩그러니 누각만 한 채 있는 잔교라는 이곳을 왜 그리도 청도를 찾는 관광객에게 추천하는지 가서 실지로 보니 좀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곧 이 다리야말로 청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임을 알았다. 100여 년 전 일개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청도에, 열강의 침입에 위협을 느낀 정부가 1891년에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편리하도록 다리를 건설한 것이다. 그 후 청도는 1897년 독일군에 의해 무력으로 점령당한다. 이는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중국인에게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청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다리

▲ 청도의 역사를 상징하는 잔교
ⓒ 조영님
그러다가 1차 대전 중에는 일본의 통치하에 있게 되었다가 5·4 운동을 계기로 다시 중국의 관할이 된다. 그러니까 이 잔교야말로 100여 년간의 청도의 역사를 말해주는 중요한 유적인 셈이다.

청도하면 제일 유명한 것이 노산의 깨끗한 물로 만든 '청도 맥주'다. 청도 맥주의 도안을 자세히 보면 작은 누각이 있고 그 앞에 넘실대는 물이 보일 것이다. 바로 이곳 잔교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한다.

잔교를 둘러보고 우리가 다시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해군박물관이다. 1989년에 개관한 해군박물관은 중국 해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박물관은 실내전청, 무기장비전구, 해상전람구 등 3개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전체 규모는 4만㎡가 된다. 먼저 실내전청에는 중국 해군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실과 해군복장이 전시되어 있고, 60여 개국에서 중국 해군에 보낸 진귀한 예품 300여건이 전시되어 있다.

실내에서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커다란 소형선박, 비행기, 전차, 화포, 미사일, 탱크 등의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각종 실물 121건이 전시되어 있다. 아들 녀석은 전시되어 있는 모든 무기에 올라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고 제 딴에는 멋있다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 본의 아니게 '찍사' 노릇을 하였다.

▲ 제법 멋있게 폼을 잡고 있는 아들
ⓒ 조영님
남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총이며 칼, 비행기, 탱크 등과 같은 물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전쟁의 산물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답사 일정에서 빼버리려다가 세상의 빛과 그림자가 모두 삶의 스승이 된다는 이유를 달고 간 것인데, 아들 녀석은 여기 해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각종 실물의 무기들을 보고 참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였다. 나 역시 사진으로만 보았던 대형 전함과 잠수함을 실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노신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시구

해군박물관을 나와서 우리는 바닷가에 조성된 '노신공원'과 '소청도공원'이라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예전에 '해빈(海濱)공원'이라고 불린 이 공원은 이름 그대로 중국의 대문호인 노신을 기념하기 위해 지금의 '노신공원'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공원의 이곳저곳에 노신과 관련된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그중에는 이런 시구도 보인다.

몽롱히 취기어린 눈으로 술집에 올라
소리지르며 방황하자니 비는 부슬부슬.
여러 봉사들 하찮은 힘을 다하지만
강물은 멈추지 않고 만고에 흐르누나.
(醉眼朦朧上酒樓/彷徨呐喊雨悠悠/群盲竭盡蚍蜉力/不廢江河萬古流)


이 시는 노신의 <자조(自嘲)>라는 시이다. 또 노신의 그 유명한 "橫眉冷對千夫指 俯首甘爲孺子牛"의 글귀도 보인다. 이 시구는 "눈썹 치켜뜨고 수천 사내의 손가락질을 차갑게 대하고, 고개 숙여 달갑게 어린아이의 무등이 되어주리"라고 해석된다. 수천 사내는 적으로, 어린아이의 무등은 인민대중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짧은 시구는 노신의 정신세계를 핵심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노신공원에서 바라본 청도
ⓒ 조영님
아무튼, 세계적으로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는 명성에 걸맞게 이곳 공원도 아주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연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고,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하얀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어떤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문득 그 분을 보니 슬프고 아련한 생각이 밀려 왔다.

또다시 우리가 답사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해저세계'였다. 먼저 우리는 해양생물관에서 900여종의 각종 해조류, 산호, 조개류, 어류 등을 보았다. 특히 거대한 고래의 골격을 전시한 것과 흑고래 표본을 보고 바다 밑에 저렇게 큰 생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이곳에는 흑고래 표본 뿐 아니라, 거북이, 펭귄, 수달, 물개 등의 다양한 동물들이 박제되어 있다.

다음으로 들어간 곳은 82.4m에 해당되는 해저터널이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니 대형 수족관 안에는 세계 각처에서 서식하고 있는 온갖 물고기들이 있었다. 완전히 바다 속처럼 되어 있었다. 머리 위로 가오리, 상어, 망치, 이름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휙휙 지나가고 큰 거북이도 느릿느릿 헤엄치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가 있다. 참 신기해서 해저터널을 한 바퀴 더 돌았는데도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해저터널을 나오면 세계 최대의 산호초관, 담수생물관, 해양생물 특별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다채로운 색깔을 내는 아름다운 산호와 물고기들, 희귀한 어류, 각종 조개류 등을 볼 수 있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바다 속 현장 체험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신기한 해저터널

▲ 와우! 정말 신나는 바다 여행이었어요.
ⓒ 조영님
아들 녀석은 환호와 탄성을 연발하며 애교까지 떨었다.

"와우! 엄마 물고들이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가요.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 좋아요."
"왜?"
"이렇게 멋진 곳을 보여주니까요. 엄마 사랑해요. 사진 많이 찍어서 방학 때 우리 가족 모두 오라고 해서 보여줘요."

중국에 와서 몇 차례 답사를 다녔지만 이곳 '해저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아이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이런 곳에 처음 오니 세상에 이런 진귀한 물고기들과 생물들이 바다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만 하였다.

우리들은 환상적인 해저세계를 나와서 오늘의 마지막 답사 코스인 오사광장(五四廣場)으로 갔다. 청도시정부와 해변가에 있는 공원에는 저녁 무렵이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 높이 연을 띄우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광장의 이름을 오사라고 한 것은 역시 중국의 역사와 관련 있다. 1919년 우리나라의 3·1 운동에 고무되어 그 몇 달 뒤인 5월 4일 중국 북경의 학생들이 제국주의와 봉건주의에 맞서서 시위를 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대형 조형물이 공원 한가운데 있으며 이것 역시 청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 오사광장 상징탑 앞에서 쉬고 있는 청도 시민들
ⓒ 조영님
산동성 동부에 있는 아름답고 깨끗한 항구도시인 청도를 반나절 만에 대충 훑어보았다. 이곳에 오니 "바다는, 불이 켜져 있으면 고독을 알지 못하는 어린애의 양등(洋燈)과 흡사하다"라는 프루스트의 글귀가 생각난다. 어린애에게 있어 등불이 고독과 좌절과 불안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면 바다 역시 인간에게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육지에서 겪은 온갖 괴로움과 고독을 바다를 통해 해소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곧잘 시원(始原)의 바다를 찾아 나서는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언제나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청도 시민들의 특권인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거주하고 있는 연대시보다 훨씬 깨끗하고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운 것이 너무 현대풍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직 내게 각인된 중국의 모습은 좀더 낡고, 지저분하고, 고대 역사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다. 연대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인지 어떤 건물 앞에 '한국 특목고 입시 설명회'라는 대형 현수막을 보니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